지난 봄.
진형이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강원도에 커피나 한 잔 하러 가자."
무슨 커피를 마시러 강원도까지 가나 싶었지만, 모처럼 콧구멍에 바람도
넣어줄 겸, 꿀꿀한 불량가장도-제수씨 말로는 서방이 아니라 큰 아들이라지만- 달래줄 겸
강원도로 차를 몰았다.
당일치기로 가볍게 춘천이나 다녀올 모양인가 보다 싶었거늘...
강릉까지 1박2일 코스란다.
남자끼리 된장질도 모자라 밀월여행씩이나... -_-;
1. 커피라디오
3시간의 운행 끝에 처음 도착한 곳은 강원도 원주의 커피라디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기에 커피숍 외부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
쓰던 DSLR 처분하고 K-7을 기다리고 있던 때라
이번 여행사진은 모두 MX와 FUJICA GEr로 촬영했다.
사용된 필름은 Kodak PROIMAGE 100, AGFA VISTA 100, PERUTZ Primera 200.
실내는 밝고 모던한 분위기.
흡연실이 따로 있어서 비흡연자뿐만 아니라 흡연자에게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물론 진형이와 나는 곧장 흡연실로 고고싱.
진한 블랙을 좋아하는 나는 만델린을 시켰다.
개운한 뒷맛도 좋고...
입안에서 몽글거리는 느낌도 좋고...
사실 아는 커피가 그것밖에 없어서이긴 하지만.
남자끼리 이런 꿀꿀한 된장질이라니... 별로 좋다가도 좋지 않은 듯.
커피맛은 참 좋았다.
2. 보헤미안
경포대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해질녘에 보헤미안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명한 커피로스터 박이추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는데...
나야 뭐 이 분야에선 문외한이라 잘...;
산장의 커피라운지에 와 있는 듯한 실내분위기.
겨울에 오면 참 좋겠다...란 느낌?
사실 장시간 운전을 하고 지쳐있던 터라, 사진도 커피도 별다른 의욕이 없는 상태였다.
여기서도 진한 블랙(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을 마셨는데
카페인을 과다섭취했는지 어질어질했던 기억만 남게 되었다.
3. 테라로사
경포대 민박집에서 술병을 부둥켜 안고 하룻밤 묵고난 뒤 달려간 곳은
남강릉IC 부근에 위치한 커피공장 테라로사.
규모면에선 가장 '먼 데서 온 보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진형이 녀석의 말로는 앞서 방문한 두 곳에 비해 가장 대중적인
커피맛을 선사하는 곳이라지만- 나같은 저질미각에게 맛의 차이는... 글쎄?
주차장에서 눈에 띈 버섯.
먹어도 될까?
커피공장이라기 보다는 온실과 정원이 딸린 남미의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실외 조경이 인상적이었다.
내부는 커피숍과 공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바에 앉아 술을 먹은 적은 있어도 커피를 마신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오늘의 커피세트를 시키면 바리스타가 종류별로 3잔의 커피를 내어준다.
가만...
한 잔은 서비스였나?
커피 공장답게 세계각국의 다양한 원두를 비롯해
커피와 관련된 여러가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도 즐기고 한가롭게 주위를 거닐며 산책을 할 수도 있어서
데이트코스로 참 좋을 것 같다...지만 유부남이랑 와버리다니.
어쨌거나 진형이 녀석 덕에 그 동안 몰랐던 커피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꿀꿀하게 유부남 손잡고 밀월여행을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면 있었던 것이 그나마의 위로랄까?
